[기자회견]"대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한사성
2022-01-18
조회수 429


오늘 11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주최한 "대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기자회견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활동가가 참석하였습니다. 아래는 이효린 활동가의 발언문 전문입니다. 



<반페미니즘 정치에 정의는 없다.>



2021년 현재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들은 황당하고 터무니없다. 처음엔 ‘집게손가락 논란’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논란’들이 마치 정당한 요구나 권리처럼 인정됨으로써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회적으로 동등한 의견처럼 수용되고 있다. 성평등을 향한 공격이 실제로 효용을 얻으며 ‘승리 경험’을 축적하고 점점 기세가 오르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의 성착취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며 2,30대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된다며 강한 피해의식을 드러냈다. 그동안 가부장제 아래 가족을 먹여 살리며 희생해온 것은 남성들이고, 지금은 오히려 여성상위시대이며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사상이므로 현재의 차별받는 피해자는 바로 남성이라는 인식이 2,30대 남성들 사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족을 혼자 먹여 살리는 가부장 신화는 학습되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한 역사는 지워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생활화되며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고용불안, 병역문제 등이 ‘이대남’이라 불리는 세대의 억울한 정서를 더 자극했다. 



여성혐오(misogyny)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로 그동안 불평등을 지적하던 언어들이 성평등을 향한 공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한다는 말이 마치 혐오의 언어도 정당한 발화로 인정받아야한다는 것처럼 왜곡되고, 싸울 대상을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상정해 페미니즘 격퇴를 외치며 공격하고 있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공정’ 논리와 함께 오히려 납작하게 읽히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누구에게나 고르게 분배될 권리를 주장할 때 서로의 몫을 누가 더 많이 빼앗는지 따지는 것으로 곡해하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의 본질적인 가치는 ‘정의’에 있다. 구조적인 차별의 실태를 이해하고 소수자가 놓인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정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등의 논리가 무조건 ‘너와 내가 똑같아야’하므로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파이싸움에서 몫을 뺏기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 우리가 지금 투쟁해야할 대상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책무가 있는 정치권은 지금 왜곡된 평등의 논리의 편에 서서 성평등을 향한 공격에 부채질하고 기름 붓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 실태를 똑바로 보라. 이제는 더 이상 여성들을 ‘된장녀’, ‘김치녀’로 구분할 필요 없이 능멸과 능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는 여성, 모르는 여성, 여성 연예인, 때로는 그저 SNS 너머로 우연히 마주친 여성을 가리지 않고 능욕의 대상으로 삼는다. 노골적으로 여성을 망가트릴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 그 자체가 재밋거리가 되는 실태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놀이 문화’로 향유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 ‘박사’ 조주빈은 돈을 벌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성폭력이 돈이 되는 사회다. 여성의 물리적 신체이든, 신체를 재현한 이미지이든 곧장 ‘음란한 것’과 ‘상품’으로 취급하는 남성문화를 기반으로 성착취 산업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2016년 여성들의 힘으로 폐쇄한 거대한 성폭력 사이트 ‘소라넷’을 기억하는가? 소라넷의 유저가 몇 명이었는지 기억하는가? 실재하는 여성폭력은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가? 성차별이 허상인가? 정말로 여성상위 시대인가? 이것이 젠더 간 ‘갈등’의 문제라고 보이는가?



대선정국에서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고 말하는 후보는 이 질문들에 답변해보라. 성평등을 향한 치열한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낸 변화들로 이 사회는 보다 정의롭고 안전해질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를 ‘분란을 일으키는 자’로 이름 붙일 때 우리는 위축되지 않고 더 큰 분란을 일으키며 차별과 폭력의 구조에 균열을 내왔다. 남성의 표와 여성의 표, 성소수자의 표, 장애인의 표 모든 표의 무게는 동일하다. 그러나 지금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은 누구의 표를 확보하고자 애쓰는가? 억울해하는 반페미니즘 정서를 등에 업고자 디씨인사이드의 글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고 생각하는가? 성평등을 향한 공격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행태야말로 페미니즘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의의 세계일 것이고, 그로 향하는 길에 성평등은 반드시 전제되는 조건임을 모르는 자는 정치의 자격이 없다. 여성들이 놓여진 현실을 더 이상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죄 없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멈추길 당부한다. 성차별주의자들의 논리에 힘입는 정치는 민주주의도, 정의도 아님을, 그것이야말로 광기어린 표심 모으기라는 것을 자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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