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문]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한다. 피해자에 대한 모든 공격을 지금 당장 멈춰라!

한사성
2022-01-13
조회수 342


위력관계를 이용해 무려 4년간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로 고소당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발인식이 13일 열렸다. 서울특별시장(葬)이 부적절하다는 청원에 50만 명이 넘게 서명했으나 장례식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같은 날, 피해자와 연대하는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 위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상세한 사실과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공간 내 피해자에 대한 공격은 극에 치닫고 있다.



첫 번째는 박 시장의 죽음을 이유로 피해자 측을 예의 없고 몰상식한 사람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예의란 ‘인간적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그러냐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떤 예의와 인간성은 보편적인 윤리로써 호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끝내기 위한 핑계’로 사용될 수 있다.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은 생전 박시장이며, 피해자는 이에 대해 제도 내에서 해결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반면 박 시장의 죽음은 사건으로부터의 회피이면 모를까, 책임지는 행위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는 박 시장의 죽음 앞에서는 인간성을 발휘할 줄 안다면, 또 한명의 사람이 당한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에도 인간적인 분노를 보여주길 요청한다.



두 번째는 ‘피해자다운,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을 이용한 공격이다. 현재 각 SNS와 커뮤니티 등에는 피해자가 4년 동안 성폭력을 겪었으면서 이제 와서 고발했다는 점이 이상하고 석연치 않다는 의견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교에게 3년간 인분을 먹이는 등의 가혹 행위를 한 ‘인분 교수’ 사건, 10년이 넘게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고 고발한 연예인의 매니저 사건, 운전기사가 4년 전 한진그룹 오너 가족의 갑질을 폭로한 사건 등에서 피해자를 수상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무고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는 것은 다른 범죄 고발에서는 보이지 않는, 성폭력 고발을 해체시키려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익명이며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점도 문제 삼는다. ‘당당하면' 나설 것이라는 논리인데, 이후 언급하겠지만 ‘박원순’을 검색하면 피해자 관련 키워드가 자동완성되어 나타나는 등 피해자가 신상을 드러내지 않은 지금도 인격 침해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 여전히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고발하는 일은 그 자체로 힘겹고 사회적인 위협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피해에 따른 감수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며, 더 큰 위험이 예측될 때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 없이 얼굴을 드러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해자에게 강요하면서 피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를 겪는 사람을 더욱 고립시킨다.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증언을 시도할 때마다 이번과 같은 "피해자답고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을 마주해왔다. 이 용어가 필요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피다순프'라는 준말을 사용할 정도이다.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하든, 이 프레임에 완전히 걸맞은 순수한 피해자는 될 수 없다. 이런 논리는 피해자를 공격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특히 낡고 비루한 것이다.



세 번째는 성희롱 자체를 ‘별일 아닌' 것으로 축소하거나, ‘성희롱 고발'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한 커뮤니티 이용자가 쓴 ‘이순신도 관노와 잤는데 그도 문제냐'는 글이 화제가 되었다. 또 현직 검사 진혜원(대구지검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4기)은 박원순과 팔짱을 낀 사진과 함께 ‘자신이 과거 그를 성추행한 사실이 있다'는 글을 올리며 성희롱 고발을 조롱하기도 했다. ‘별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의도였겠으나, 이들은 자신이 무엇이 성희롱이며 성희롱 고발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성폭력은 단순히 ‘여체를 건드려서' 문제가 되는 ‘여자 문제’ 따위가 아니다. 박 시장의 경우에는 그를 위해 위계와 권력이 동원하기까지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을 광고하는 것으로는 박 시장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며, 이는 피해자의 상처를 늘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성폭력 사건을 이슈로 소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신상을 알아내려는 행태이다. 최근 진보 성향 커뮤니티 ‘딴지일보’에서는 ‘피해자가 누군지 색출해내서 참교육을 시켜주겠다'는 글이 올라오고 수많은 추천과 응원댓글을 받았다. 또한 이것이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소수의 댓글 역시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의 신상과 외모를 궁금해하거나 피해자의 신상을 알아내려는 시도는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여성의 신상을 아는 것이 권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캐내는 모습, 피해자의 신상을 궁금해하는 모습들은 지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에서 숱하게 보아온 가해자들과 흡사하다. 심지어 해당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는 1면에 ‘박원순 고소 여성 색출해 응징하겠다'라는 헤드라인을 실었다. 성범죄의 구조를 지적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저버리고 성범죄를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 보도의 문제점을 수없이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역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있다.



피해자를 향한 공격은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시작되었고, 사이버 공간 특성상 빠르게 전파되고 재생산되며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해진 것은 사건이 알려진 초기에 박 시장의 명예를 비호하려는 정치계와 서울시의 움직임이 있었던 탓도 크다. 성폭력 가해자를 보호하려고 할 때 가장 손쉽게 행해지는 방법이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바로 박원순의 성폭력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아직 고발하지 않은' 미래의 피해 고발인을 함께 억누르고 있다. 피해자를 공격하는 행위는 범죄이며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성폭력을 동시에 보호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이해하길 바란다. 피해자에 대한 모든 공격을 지금 당장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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