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법·정책세미나 네 번째 후기 : 디지털성범죄 영역에서 ‘동의’ 담론의 한계

한사성
2026-09-23
조회수 402



42bcc196cbf00.jpg


한사성은 내년 10주년을 앞두고 있어요. 사이버성폭력을 둘러싼 여러 영역들을 다시 둘러보며 공부도, 토론도, 문제의식도 벼려보고자 내부 법정책세미나를 계획했지요. 매년 그러하듯 올해 역시 새로운 이슈와 돌발상황들이 한사성을 휘몰아치고 가지만 법정책세미나 4회차를 사수해냈습니다.


반성폭력 운동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고, 일상적 성폭력의 영역에서도 '동의의 결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데요. 사이버성폭력 영역에서 '동의’라는 부분은 어떤 의미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디지털성범죄 영역에서 ‘동의’ 담론의 한계]를 4회차 세미나의 주제로 잡아 보았습니다.


신성연이 활동가가 이번 주제의 발제를 맡으며 고심해 선택해 준 텍스트를 활동가들이 함께 읽었어요.


1. 강간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레베카 위스넌트)

Feminist Perspectives on Rape (Rebecca Whisnant 2009) 2장 

기준 : 무엇이 강간으로 간주되는가?

(Criteria: What Counts?)


영미권의 전통적인 개인의 신체에 대한 침해불가능성 입장을 살펴보고 가부장제 안에서는 동의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함을 주장하는 강경파(매키넌) 시각부터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해야한다는 모델(피노) 등 '동의'를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에서의 ‘동의’는 단순한 마음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가 당연하게 여겼던 통념과 가정을 뒤집는 것으로 근본적인 젠더 권력관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2. 비동의 간음죄의 ‘동의’ 개념에 대한 고찰 (김주현)

A Study on the Concept of Consent in Non-Consensual Sexual Offences(2024)

논문 전체


‘동의’는 한쪽이 제안하고 다른 한쪽이 수용하는 과정임을 짚으며 대등한 합의라기보다는 권력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동의’의 사전적 의미에도 자발성이 포함되어있지 않아 동의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받아들이다’에 가깝다고 얘기하고 있고요.


저자는 서구식 'Yes means Yes(적극적 동의)'를 한국문화에 단순 이식하는 것은 남성 주도-여성 동의라는 기존 관행을 오히려 공고히 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함께 짚고 있습니다. 더하여 한국 사회의 지역적·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동의 개념의 재구성이 필요함을 살펴보았습니다.


3. 이미지 기반 성적 학대: 동의 없는 나체 또는 성적 이미지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연구 (공저)

Image-based Sexual Abuse: A Study on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Non-consensual Nude or Sexual Imagery (Nicola Henry, Clare McGlynn, Asher Flynn, Kelly Johnson, Anastasia Powell, and
Adrian J. Scott 2020)

가운데 6장 동의 문화의 부재 : 이미지 공유, 성적 자율성, 그리고 피해를 둘러싼 사회적 규범의 변화

(The Missing Culture of Consent: Shifting Social Norms on Image-Sharing, Sexual Autonomy and Harm) 


타인의 누드이미지나 성적이미지를 동의없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전송하는 등의 일련의 행위 여기서 이미지기반 성적학대(Image-based Sexual Abuse)로 지칭하는 이 행위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사이에 마치 놀이처럼 소비되나 실상은 이미지 기반 성폭력인 인식간의 괴리와 무척 심각하고 해로운 한편, 어떤 경우에는 명백한 피해로 경험되지 않는 속성도 지니고 있다고 짚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해당 공동체가 ‘피해’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방법으로 그 상황을 마주한 방관자(bystander)의 개입의향, 행동에 나서는데 대한 또래의 지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설문한 결과를 함께 싣고 있습니다.


9492c3c3b1b5f.jpg


이 세가지 텍스트를 경유한 후, 한사성은 사이버성폭력 영역에서의 ‘동의’ 개념을 중심으로 얘기 나눴습니다.


사이버성폭력에서는 촬영에 동의한 것이 곧 유포해도 된다는 동의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간접적 동의 차단)라는 문장에서부터 동의 개념이 등장하는 데요.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 맥락은 제거되고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이 더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죠. 나아가 기존의 동의 모델은 2인의 당사자간 동의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적용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동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반복되는 현상 자체가 사회 전반에 제대로 된 동의 문화나 규범적 기준이 부재한다는 반증이겠지요. 강간죄 개정 국면에서 한사성은 동의에 대한 어떤 입장과 개념을 지니고 논의에 참여할지 까지의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텍스트 가운데 활동가들이 흥미롭게 읽은 몇가지가 있었는데요.


자신이 성적매력이 있는 존재임을 이미지로 어필하는 것이 여성에게  “임파워링” 인가? (동의 문화의 부재 중에서)

성적대상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한국에선 “유교걸”로 나타나는 현상과 비교되었어요. 팔로워와 좋아요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해진 환경 위에서 개인이 성적 주체성을 주장하며 실천을 하더라도 결국 또 다시 기존 규범을 답습하고 젠더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점과 함께 동의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성적 실천으로 '임파워링(권력화)'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끌시끌한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동의’의 주체를 정상성을 확보한 사람들로 한정하고 있는 부분

어쩔 수 없이 법제화 과정은 '대표적 여성'을 상정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계급적·환경적으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현실적 삶과 경험이 배제되고 있음을 확인했어요. 그렇다면 동의를 할 수 없는 사람들, 동의를 하더라도 동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페미니즘이긴 하죠.


논의는 자연스럽게 강간죄 개정 요구의 배경에서 '동의' 개념의 확장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유주의적·1:1 대인관계 중심의 기존 '동의' 모델을 사이버성폭력 및 구조적 폭력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함을 확인했어요. 동의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보단 살짝 빗나갔지만 오히려 동의에서 탈락하거나 제외되는 예시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드러내는 동료들의 발화를 마주하며 더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이야기가 모아지거나 뾰족하게 결론이 나오는 주제가 아니었지만 서양과 한국의 개념사이를 넘나들며 서로의 시각차이를 탐색하느라 세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던 세미나였어요.


다음 주제는 정부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은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입니다. (과연?) 



작성: 활동가 시원

0 0

한사자레터 구독하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