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연수 활동가를 추모하러 발걸음하신 여러분. 저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파입니다. 한사성은 온라인 공간의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하는 단체고요, 저는 이연수 활동가와는 2023년 12월부터 2024년 9월까지 10개월 정도 상근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연수 활동가가 떠난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이 광장에서 탄핵을 이끌어내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다니, 연수에게 들려주면 믿을까요? 한사성 활동가들과는 광장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연수가 있었다면 얼마나 열심히 광장에 나왔을까? 아마 여러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수차례 했을 것이고, 남태령에도 갔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감기에 많이 걸려서 사무실에 못 나왔을 것 같고요.
윤석열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던 날, 한사성의 모 활동가는 기뻐하는 순간의 얼굴 뒤에 금새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을 했습니다. 연수 생각이 난다면서요. 주위 사람들은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어요. 아마 그토록 기다려온 탄핵에 감동받은 줄 알았겠죠.
한사성 활동가들은 이렇게 연수를 여기저기서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광장에서, 누군가는 여성주의 이론 텍스트에서, 누군가는 강남역 집회에서, 누군가는 화장실에서요.
그렇게 연수를 떠올리며 “아직 연수가 떠난지 6개월밖에 안 되었어.”, “1년도 안 되었어”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년 이맘 때는 1년 후가 막막히 멀었는데, 이렇게 살아졌네요.
한사성 활동가들은 연수를 길게 알고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아주 슬펐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회피하기도, 섭섭해하기도, 미워하기도, 덤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깨달았어요. 이 모든 반응이 슬퍼서 그렇다는 걸요.
저는 연수가 떠난지 한참 후에 연수가 밉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연수가 한사성에 활동하며 적응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또 연수도, 저도 함께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고, 연수의 자리를 점차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9월에 연수는 딥페이크 성폭력 집회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왜 우리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지 않았는지 말이에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트랜스젠더에게 여전히 너무 힘든 세상이기는 했습니다. 연수가 세 달을 더 살았다면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광장에서도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가 욕먹는 것을 보았어야 하겠죠. 열 달을 더 살았다면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가 되는 것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반대하는 트윗도 목격했을 거고요. 미국도 난리죠. 일년을 더 살았다면 찰리 커크를 죽인 사람이 트랜스젠더일 것이라는 둥, 범인이 밝혀지고 나니 그의 룸메이트가 트랜스젠더일 것이라는 둥 하는 꼴도 보았어야 하겠죠. 그리고 아마 연수는 매번 싸웠겠죠. 극우 플로우의 강세로 트랜스젠더가 세계적인 동네북이 되고만 이 지구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너무 더디게 바뀝니다. 바뀐 세상이 한달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저항하면서도 버텨야 합니다. 버틸만한 삶,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한사성은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저희는 ‘불안피해’라는 개념을 유형화 했는데요, 촬영이나 유포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촬영이 되었을까, 유포가 되지 않았을까 불안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동안 예민하고 과민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던 여성의 경험을 ‘불안피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사회적인 고통이라는 선언이자 어떤 고통인지 규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이름 없는 고통,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을 경청하고, 이름을 붙이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연수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수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도요.
연수를 그만 미워하기로 하며, 또 연수의 고통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저를 그만 미워하기로 하며, 그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듣기, 곱씹어 듣기, 깊이 이해하기, 그게 시작이겠지요.
연수는 트랜스페미니즘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수가 어떤 전망을 가졌었는지는 더 들어보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사람들, 성을 팔면서 살아가는 더러운 사람들, 성적 실천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낙태하는 무책임한 사람들, 쾌락만을 위해 섹스하고 자식을 낳지는 못해서 인류의 번식을 막아 결국 멸망하게 할 호모들. 이들의 낙인 찍힌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페미니즘 해나간다면 그녀의 전망과 좀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한사성 활동가들도 인천가족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연수 부고 이후에 한사성에 들고 난 활동가 모두 함께요. 연수가 묻힌 땅의 잔디는 푸르게 자랐고, 하늘은 너무 쾌청하게 맑았습니다. 작년에는 혼비백산한 상태로 갔던 곳이었는데, 오늘 함께 웃으며 연수에게 인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자리 마련해주신 행성인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애도와 위로 나눌 수 있어 고맙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또 살고, 그리고 만나면 좋겠습니다. |
9월 29일은 한사성에서 10개월간 뜨겁게 활동했던 故 이연수 활동가의 1주기입니다. 한사성은 이날 하루, 시간을 내어 연수 활동가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연수 활동가가 있는 인천가족공원에 방문하여 준비한 아주 예쁜 꽃바구니를 놓고 연수 활동가에게 1년치의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연수 활동가 이후 합류한 시원, 나비, 명금 활동가도 함께 했고, 1년 사이에 활동을 종료한 봄눈별 활동가도 함께 와주었습니다. 음표 활동가도 함께 오진 못했지만 영상통화로 마음을 나누었어요.
근처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다과를 나눠 먹으며 연수 활동가와의 추억을 다시금 꺼내어 이야기했습니다. 사전에 “연수 퀴즈”를 하나씩 준비해서 문제를 내고 맞히는 레크리에이션도 진행했어요.
이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열어주신 1주기 추모식에 참여해서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함께했습니다. 각자 포스트잇에 편지도 몇 자 적고, 준비해주신 추모식의 공연, 발언, 영상을 보며 울기도 웃기도 했습니다.
여파 활동가가 추모식에서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연수 활동가를 추모하러 발걸음하신 여러분.
저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파입니다.
한사성은 온라인 공간의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하는 단체고요, 저는 이연수 활동가와는 2023년 12월부터 2024년 9월까지 10개월 정도 상근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연수 활동가가 떠난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이 광장에서 탄핵을 이끌어내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다니, 연수에게 들려주면 믿을까요? 한사성 활동가들과는 광장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연수가 있었다면 얼마나 열심히 광장에 나왔을까? 아마 여러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수차례 했을 것이고, 남태령에도 갔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감기에 많이 걸려서 사무실에 못 나왔을 것 같고요.
윤석열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던 날, 한사성의 모 활동가는 기뻐하는 순간의 얼굴 뒤에 금새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을 했습니다. 연수 생각이 난다면서요. 주위 사람들은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어요. 아마 그토록 기다려온 탄핵에 감동받은 줄 알았겠죠.
한사성 활동가들은 이렇게 연수를 여기저기서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광장에서, 누군가는 여성주의 이론 텍스트에서, 누군가는 강남역 집회에서, 누군가는 화장실에서요.
그렇게 연수를 떠올리며 “아직 연수가 떠난지 6개월밖에 안 되었어.”, “1년도 안 되었어”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년 이맘 때는 1년 후가 막막히 멀었는데, 이렇게 살아졌네요.
한사성 활동가들은 연수를 길게 알고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아주 슬펐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회피하기도, 섭섭해하기도, 미워하기도, 덤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깨달았어요. 이 모든 반응이 슬퍼서 그렇다는 걸요.
저는 연수가 떠난지 한참 후에 연수가 밉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연수가 한사성에 활동하며 적응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또 연수도, 저도 함께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고, 연수의 자리를 점차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9월에 연수는 딥페이크 성폭력 집회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왜 우리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지 않았는지 말이에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트랜스젠더에게 여전히 너무 힘든 세상이기는 했습니다. 연수가 세 달을 더 살았다면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광장에서도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가 욕먹는 것을 보았어야 하겠죠. 열 달을 더 살았다면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가 되는 것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반대하는 트윗도 목격했을 거고요. 미국도 난리죠. 일년을 더 살았다면 찰리 커크를 죽인 사람이 트랜스젠더일 것이라는 둥, 범인이 밝혀지고 나니 그의 룸메이트가 트랜스젠더일 것이라는 둥 하는 꼴도 보았어야 하겠죠. 그리고 아마 연수는 매번 싸웠겠죠. 극우 플로우의 강세로 트랜스젠더가 세계적인 동네북이 되고만 이 지구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너무 더디게 바뀝니다. 바뀐 세상이 한달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저항하면서도 버텨야 합니다. 버틸만한 삶,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한사성은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저희는 ‘불안피해’라는 개념을 유형화 했는데요, 촬영이나 유포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촬영이 되었을까, 유포가 되지 않았을까 불안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동안 예민하고 과민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던 여성의 경험을 ‘불안피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사회적인 고통이라는 선언이자 어떤 고통인지 규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이름 없는 고통,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을 경청하고, 이름을 붙이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연수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수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도요.
연수를 그만 미워하기로 하며, 또 연수의 고통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저를 그만 미워하기로 하며, 그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듣기, 곱씹어 듣기, 깊이 이해하기, 그게 시작이겠지요.
연수는 트랜스페미니즘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수가 어떤 전망을 가졌었는지는 더 들어보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사람들, 성을 팔면서 살아가는 더러운 사람들, 성적 실천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낙태하는 무책임한 사람들, 쾌락만을 위해 섹스하고 자식을 낳지는 못해서 인류의 번식을 막아 결국 멸망하게 할 호모들. 이들의 낙인 찍힌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페미니즘 해나간다면 그녀의 전망과 좀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한사성 활동가들도 인천가족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연수 부고 이후에 한사성에 들고 난 활동가 모두 함께요. 연수가 묻힌 땅의 잔디는 푸르게 자랐고, 하늘은 너무 쾌청하게 맑았습니다. 작년에는 혼비백산한 상태로 갔던 곳이었는데, 오늘 함께 웃으며 연수에게 인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자리 마련해주신 행성인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애도와 위로 나눌 수 있어 고맙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또 살고, 그리고 만나면 좋겠습니다.
무지개보다 빛나고 또 뜨거웠던 연수 활동가를 잊지 않으며, 여파 활동가의 말처럼,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사람들, 성을 팔면서 살아가는 더러운 사람들, 성적 실천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낙태하는 무책임한 사람들, 쾌락만을 위해 섹스하고 자식을 낳지는 못해서 인류의 번식을 막아 결국 멸망하게 할 호모들. 이들의 낙인 찍힌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페미니즘”을, 한사성은 계속 고민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한사성과 함께 전망을 그리며, 한사성과 함께 고민을 이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끝끝내 우리가 해방될 세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