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6 서울 인권 컨퍼런스
2018년 12월 6일 열린 서울 인권 컨퍼런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리아가 발언자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미투 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 20대 여성인 저에게 사이버성폭력이 무슨 의미인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웹하드로 시작되는 사이버성폭력 산업 이야기, 불법촬영 편파수사에 관한 이야기 등등, 사이버성폭력이 주목받는 의제가 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공식적으로 활동가가 아닌 ‘나’에게 사이버성폭력이 무엇인지 말하는 일은 처음입니다.
지난 가을이었어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2017년에서 2018년 한 해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며 ‘한국사이버성폭력 대응을 위한 기본서’를 만들었습니다. 사이버성폭력의 기본 개념, 유형부터 더 자세한 담론들을 담아 보려고 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사이버성폭력의 실태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였습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이버성폭력 유형인 성적촬영물 비동의유포는 누군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피해경험자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피해촬영물은 실제 피해자가 있는 영상이니까, 영상 캡처 이미지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블러처리를 해도 누군가는 그 사진의 출처를 알아내고 영상을 찾아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피해경험자의 피해 규모를 키우지 않는 선에서 생생한 현실의 모습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면요, 그냥 제 방 사진을 찍어서 피해촬영물 예시 이미지로 넣었어요. 제 자취방 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툭툭 찍어 올렸습니다. 필통, 침대, 제 방에서 문틈을 통해 보이는 작은 거실과 부엌의 끄트머리… 제 삶의 조각들은 정말 완벽하게 ‘국산야동’의 한 장면을 대체해 냈습니다. ‘국산 야동’이라 불리는 촬영물들은 먹고, 자고,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의 일상을 찍은 것이고, 저 또한 그렇게 살아 있는 인간이니까요. 저와 관련된 어느 구석을 찍어서 들이밀어도 ‘국산야동’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일이었습니다.
20대 여성인 제가 느끼는 사이버성폭력은 이런 것입니다. 그냥 제 일상 얘기입니다. 제가 늘 직면하고 있는 위협인 동시에 피부에 와 닿도록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입니다. 저는 피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반성폭력 활동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어쨌든 불법촬영 피해를 경험해 본 것도 사실입니다. 지하철에서 인지한 것만 해도 두 번의 얼굴, 전신촬영이 있었고, 갓 대학에 들어가 사귄 전 남자친구가 제 신체를 몰래 찍었다가 들켜서 헤어진 적도 있습니다. 더 운이 나빴다면 제 성적 촬영물이 사이버공간에 떠도는 저 수많은 ‘국산’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원자로서 모니터링과 삭제 지원을 하면서도 모든 촬영물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촬영물을 검토하는 내내 의식의 한 부분은 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몸을 찾게 됩니다. 피해촬영물의 유통량이 얼마나 많은지 목격하게 되면, 자신의 촬영물만은 없을 것이라 믿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작년 웹하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50개 가량의 웹하드 중 단 하나의 웹하드에서 피해촬영물을 뜻하는 ‘국산야동’으로 10만개가 검색되었어요. 한사성에서 지원한 피해경험자의 촬영물이 발견된 해외 불법 포르노사이트는 300여개 가량 되고, 전수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게시물이 업로드 되며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그 종류도 어찌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피해촬영물이 성관계 영상에만 국한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여성들은 성기, 가슴, 다리, 손, 발, 귀 등의 신체 부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 밥 먹는 모습,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까지 촬영당해 포르노로 소비됩니다.
기존 세대가 경험해 왔던 성폭력도 여성의 생존에 위협을 주기는 했지만, 여성들이 강간당할까봐 두려워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사이버성폭력에는 아예 불안피해라는 유형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사이버성폭력을 경험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나를 찍었을까봐, 유포했을까봐 불안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저희 단체는 불안 피해를 경험하는 여성들을 ‘국산’이라 명명된 성폭력이 하나의 취향 정도로 통용되어 왔던 이 사회에 대한 피해경험자로 규정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심리치료 지원을 드리기도 하고, 피해경험자 분의 인상착의를 모니터링하며 혹시 유포된 촬영물이 있는지 찾아 드리기도 합니다. 불안 피해경험자의 비율은 전체 피해경험자의 10% 정도나 됩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성폭력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먼 과거부터, 여성들은 빼앗긴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들고 일어서 왔습니다. 밤거리를 되찾기 위해, 재생산권을 되찾기 위해… 그런데 이렇게 하루 24시간, 삶 자체를 빼앗겨 뛰쳐나오게 된 세대는 저희가 또 처음이 아닐까요. 숨 쉬는 모든 순간을 빼앗긴 감각이 세대 전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버성폭력을 향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혜화역 시위 또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시위 참가자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문구는 사실 “살고 싶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복잡한 평가와 달리 그들 중 대부분은 그저 살고 싶어하는 절박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외쳐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여성이 스스로 찍어 올리는 프로필 사진 한두 장만 있어도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적 촬영물을 완벽하게 제작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얼굴로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만들 수 있고, 한 번도 한 적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는 현실이 도래한 것입니다. 다음 세대 남자 아이들은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 얼굴로 맞춤 제작된 포르노를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다음 세대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일입니다.
20대 여성인 저는 이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활동가인 리아는 두렵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용기를 끌어내 다음 싸움을 준비합니다. 저는 이번 미투 운동을 보며,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감각을 얻었습니다. 싸우려면 지금 싸워야 승산이 있다고 느낍니다.
여러분 각자의 위치가 다르고, 혜화역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다르겠지만, 제게 혜화역 시위는 거대한 #미투 의 외침입니다. 나도 너였고, 너의 곁에 내가 있다는 절절한 외침입니다.
한사성은 그들의 외침 덕분에 비영리민간단체 하나가 혼자서 얻을 수 없는 성과를 얻었습니다.지금 단체 초기에 저희가 주장했던 것들, 굉장히 많이 이루어졌어요. 2017년 초반까지만해도, 사이버성폭력은 썸네일 같은 기본적인 인터넷 용어도 몰랐던 경찰 때문에 수사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전국에 사이버성폭력 전담 수사팀이 신설되었죠.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 수많은 미투 법안 중 가장 수월하게 통과되었습니다.
성과가 그렇다면 과제는 뭘까요. 저는 그들의 미투에 이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사성은 곧 2019년 단체 비전을 짜는 워크샵을 떠납니다. 저희의 위치에서 되돌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한사성이라는 단체가 내년에 20대 여성인 제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 주어야 할지 정할 것입니다. 나와 우리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잃지 않으며 저의 과제를 찾아 가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2018년 12월 18일.
마지막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시위가 4일 남았습니다.
12월 22일 토요일, 2시에서 5시 40분까지
광화문역 9번 출구입니다.
혜화역 및 광화문을 거친 붉은 시위는 한사성을 포함한 그 어떤 단체와도 관련 없는 독립적인 주체들이며,
그동안 한사성 팀원들도 모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불법촬영 문제와 편파수사 문제를 규탄하겠다는 의지로 행동한 ‘불편한 용기’와 수만 명의 시민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한사성은 남은 4일동안 매일 웹하드카르텔 콘텐츠를 생산하여 동료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자 합니다. 지난 1년간 변화를 만들어 주었고, 다가오는 2019년에도 변화를 만들며 역사가 되어갈 당신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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