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우리는 파면 선고 이상의 축제를 꿈꾼다

한사성
2025-04-04
조회수 22



우리는 파면 선고 이상의 축제를 꿈꾼다



123일의 기나긴 투쟁 끝에, 윤석열이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는 동시에, 명백한 내란을 여태 선고조차 미뤄오며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헌법재판소의 지난 지지부진함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오늘의 선고는 분명히 우리가 만들어낸 선고이다. 작년 겨울부터 평일이고 주말이고,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광장을 지켜온 시민들이 일궈낸 것이다. 페미니스트,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억압 받아온 이들이 일궈낸 것이다. 내란세력을 몰아내고 달라질 세계를 희망하며 그동안 광장에서 함께해온 ‘우리’들에게 뜨거운 존경과 감사와 연대를 전한다.


내란세력을 비롯한 수많은 ‘윤석열들’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가 그간 표백된 환상 속에 살아왔음을 지난 몇 달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연한 규칙과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이 지켜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규칙과 상식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부정의해질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규칙은 누가 만드는지, 누가 만든 규칙에서 누가 억압받는지, 또 억압받는 이가 얼마나 억압받을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특히 온오프라인에서의 혐오와 폭력은 지난 몇달간 더욱 극단적으로 터져 나왔다. 특히 여성혐오와 긴밀하게 붙어 작동하는 폭주하는 남성성을 확인했다. 때때로 우리의 광장조차도 안전하지 않고 존엄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확인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 몇 달은, 억압받고 소외되고 지워지고 배제되고 탈락된 우리가, 그리고 우리들의 확장된 연대가 ‘사회대개혁’의 동력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투쟁의 학교인 광장에서 우리가 선명히 느낀 것은 바로 만날 수 '있다'는 감각이자, 만나게 '된다'는 감각이자, 만나야'만 한다'는 감각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만났다. 남태령, 한강진, 거제 한화오션, 동덕여대, 혜화역 지하철 역사, 이스라엘 대사관, 광화문에서 온갖 의제를 가로지르며 만났다. 한번 ‘만남’을 감각한 우리의 연대의 불씨가 쉬이 꺼지지 않을 것임을 확인받았다. 우리는 진실로, 이전과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전선 너머의 것을 보라. 그 너머에는 2월 28일 조선의 독립선언에 연대하고자 광장의 발언대에 선 일본인이 있고, 극우의 폭력에도 멈추지 않고 저항한 이화여대가 있고, 학교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동덕여대가 있고, 아직도 지하철을 타지 못하여 투쟁하는 장애인이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엄하고자 목소리 내는 퀴어가 있고, 성차별과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맞서는 페미니스트가 있고, 혐중 정서로 인해 스톱워치를 태블릿 스크린에 띄워두고 발언했던 이주배경 청년이 있고, 부산의 집회에서 민주주의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 발언에 나섰던 소위 ‘술집 여자’가 있고, 아직도 땅을 딛지 못하고 고공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고, 학내 성폭력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온 지혜복 교사가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향해야만 하는지 알려주는 분명하고 선명한 문제의식이 있다.


우리의 시대는 달라야 하며, 달라져야 하며, 달라질 것이다. 광장의, 무지개깃발들의, 그 수많은 응원봉동지식 인사의 문법만 가져가고 내용은 소화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마 우리 모두의 축제라고 말하기는 단언컨대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우리가 바라는 ‘다음’ 민주주의는 정권교체 그 이상이다. 이미 밀려난 채로 벼랑 끝을 디디며 살아온 우리에게, 더 중요한 투쟁이나 더 시급한 싸움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단호하게 여성혐오를 비롯한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결별을 선언하고자 한다. 분탕질, 물흐리기, 논점 흐리기, 소위 ‘표 빠지는 짓’, 그 어떤 소릴 듣더라도 우리는 이 말을 똑똑히 하고 싶다. 우리의 ‘사회대개혁’은 정권교체 이상이오, 우리의 꿈은 헌법 질서 수호 너머에 있으며,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분명 ‘우리가 다시 만들’ 세계이다. 함께 다음으로 갈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도, 다른 세계도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억압 받아온 이들과 함께 다음으로 건너갈 것이다.


2025년 4월 4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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