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와 ‘음지’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 인터넷 방송 BJ 여성의 광고 모델 기용 취소 및 사이버몹에 부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 등지에서 화장품 회사와 협업한 인터넷 방송 BJ 여성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언론에서는 비난 논리를 그대로 받아 적어 확산시키고 있고, 해당 화장품 회사는 BJ 여성을 모델로 기용한 것에 사과까지 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4년 유명 개그우먼 유튜브 채널에 해당 BJ 여성이 출연하자 항의가 빗발쳐 끝내 영상을 비공개했고, 25년 포토부스 브랜드와의 협업도 항의와 비난으로 취소되었다. 해당 BJ가 주로 남성 시청자를 겨냥하여 성적 만족을 제공하는 콘텐츠로 수입을 얻기 때문에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이 주를 이뤘다.
모두 ‘음지’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양지’로 나오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음지’는 볕이 잘 들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정상 사회에 포함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음지’의 존재인 BJ 여성이 정상 사회에 나올 자격이 미달된다는 비난이다. 여성에게는 ‘급’이 있고, 성적인 위계에 따라 그 ‘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문란한,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는, 섹슈얼리티로 수익을 창출하는 여성은 ‘양지’에 나올 ‘급’이 안 된다는 논리다.
우리는 ‘양지’에 나올 자격 판단의 기준을 거부한다. 바꿔 말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 기준에 충족된 여성과 자격 미달의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 사회는 문란한 여성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겪는다고 비난하고, 이 통념은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깎아 말하자면 ‘음지’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나’라는 존재를 이 세계가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구성된다. 함부로 대해도 되고 보호할 가치도 없는, 즉 여성의 섹슈얼리티 위계에 따라 나뉜 ‘급’이 낮은 여성으로 여겨짐에 따른 고통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얼마나 순결한지 해명하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은 계속 이 부당한 평가에 저항해 왔다.
‘음지’에 사는 존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상으로의 복귀다. 건전하고 성실한 정상노동으로 정당한 돈을 벌라고 강요하면서, 동시에 감히 ‘양지’에 나오는 것은 질색하며 반발한다.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혐오다. 존재하는 자를 없는 셈 치는 것, 존재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 사회에 끼워 주지 않고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은 혐오다. ‘음지’에서 살아가는 존재는 정상성 복귀를 강요받는 한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양지’에서 계속 배제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그런 ‘양지’는 해방이 아니다. 정상 여성만의 ‘양지’는 해방일 수 없다.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을 ‘행위자’로서 비난하고 사회에 있을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유구한 폭력일 뿐이다.
문란하고 난잡하다고, 유해하다고 손가락질하는 낙인을 해체하자. 우리는 손가락질 끝에 놓인 존재의 손을 잡고 볕으로 나갈 것이다.
2026년 4월 23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양지’와 ‘음지’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 인터넷 방송 BJ 여성의 광고 모델 기용 취소 및 사이버몹에 부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 등지에서 화장품 회사와 협업한 인터넷 방송 BJ 여성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언론에서는 비난 논리를 그대로 받아 적어 확산시키고 있고, 해당 화장품 회사는 BJ 여성을 모델로 기용한 것에 사과까지 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4년 유명 개그우먼 유튜브 채널에 해당 BJ 여성이 출연하자 항의가 빗발쳐 끝내 영상을 비공개했고, 25년 포토부스 브랜드와의 협업도 항의와 비난으로 취소되었다. 해당 BJ가 주로 남성 시청자를 겨냥하여 성적 만족을 제공하는 콘텐츠로 수입을 얻기 때문에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이 주를 이뤘다.
모두 ‘음지’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양지’로 나오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음지’는 볕이 잘 들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정상 사회에 포함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음지’의 존재인 BJ 여성이 정상 사회에 나올 자격이 미달된다는 비난이다. 여성에게는 ‘급’이 있고, 성적인 위계에 따라 그 ‘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문란한,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는, 섹슈얼리티로 수익을 창출하는 여성은 ‘양지’에 나올 ‘급’이 안 된다는 논리다.
우리는 ‘양지’에 나올 자격 판단의 기준을 거부한다. 바꿔 말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 기준에 충족된 여성과 자격 미달의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 사회는 문란한 여성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겪는다고 비난하고, 이 통념은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깎아 말하자면 ‘음지’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나’라는 존재를 이 세계가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구성된다. 함부로 대해도 되고 보호할 가치도 없는, 즉 여성의 섹슈얼리티 위계에 따라 나뉜 ‘급’이 낮은 여성으로 여겨짐에 따른 고통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얼마나 순결한지 해명하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은 계속 이 부당한 평가에 저항해 왔다.
‘음지’에 사는 존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상으로의 복귀다. 건전하고 성실한 정상노동으로 정당한 돈을 벌라고 강요하면서, 동시에 감히 ‘양지’에 나오는 것은 질색하며 반발한다.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혐오다. 존재하는 자를 없는 셈 치는 것, 존재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 사회에 끼워 주지 않고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은 혐오다. ‘음지’에서 살아가는 존재는 정상성 복귀를 강요받는 한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양지’에서 계속 배제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그런 ‘양지’는 해방이 아니다. 정상 여성만의 ‘양지’는 해방일 수 없다.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을 ‘행위자’로서 비난하고 사회에 있을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유구한 폭력일 뿐이다.
문란하고 난잡하다고, 유해하다고 손가락질하는 낙인을 해체하자. 우리는 손가락질 끝에 놓인 존재의 손을 잡고 볕으로 나갈 것이다.
2026년 4월 23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