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멈출 수 없다.

한사성
2022-01-13
조회수 339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여성들은 클럽에서 실제로 강간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 '강간’을 사고파는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도시 괴담처럼 떠돌던 '강간 약물’, '성 접대’ 이야기와 남연예인의 단톡방 내 사이버 성폭력 사건까지, 그동안 느꼈던 불편감의 실체가 눈앞에 들이밀어 졌다. 그건 모두 진짜였다. 그건, 어딘가에서 그런 일을 당한 여성이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앞으로도 더 생길 수 있는 뜻이었다.
이 모든 감각은 이대로 수사가 끝난다 하더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 
15일, 경찰이 '버닝썬 게이트’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에 관련해 의심되는 정황을 찾지 못했다며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VVIP룸 집단강간사건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유리홀딩스의 공동대표 승리, 유인석, 버닝썬 대표 이문호, 마약공급책으로 지목된 MD애나 모두 구속수사 영장이 기각되었다. 성매매 알선만 12차례 했다는 승리는 영장 기각 당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일과를 마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가 느꼈던 감각을 다시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성의 피해는 다시 한 번 은폐되어 전설 같은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실체를 만나 증폭된 불안은 단순한 신경과민쯤으로 치부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 사건이 음모론과 같은 무게로 회자될 것이라는 것이다. 혜화역의 붉은 물결을 지나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리쳐 왔음에도 끝끝내 목소리를 들어야 할 상대는 듣지 않았다는 것, 아직도 우리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사성이 느끼는 절망과 무력감을 당신 또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마다 '화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당연한 결과다. 이제 버닝썬 게이트를 포함한 성폭력 이슈는 '지리멸렬한' '보기만해도 피곤한' 것처럼 되었다.
 페미니즘은 한국사회에서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바꾼 만큼 심한 백래시를 겪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분노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기력을 끊임없이 학습시키려고 한다. 이번 수사 결과 또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 싸움으로 읽기에 충분하다.
 진보에는 반동이 있고 반동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되풀이되는 과정의 감정소모를 버티지 못했거나, 지지부진하게 올라가는 성과에 지쳐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것인가?
버닝썬 게이트는 ‘여성 인권 의제'가 메인스트림에 오른 중요한 사례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이 끊임없이 외쳐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토록 황당한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은 그만큼 민감하고 넘어가선 안 될 요충지를 건드렸다는 증거로, 지금의 위기가 판도를 뒤집을 기회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지금 남성 카르텔의 최중심부에 근접해 있는 것이다.
한사성은 여성대상 폭력과 범죄에 맞서 싸우는 집단으로서 강렬한 분노를 표한다. 내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한사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동에 깎여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끝내 타협하거나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버닝썬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그 어떤 사건에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의 끝에 누가 승리하는지, 이 다음 세상을 보고야 말겠다.
2019.05.16.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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