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한사성의 다짐
안녕하세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입니다.
최근 한사성에서 활동했던 전 활동가들의 문제제기에 따른 염려와 더불어 한사성의 입장을 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습니다. 활동가 모두가 이 일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손해배상 및 미지급 임금 지급 등의 절차와 단체운영 개선을 위한 세밀한 논의를 진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그동안 한사성에서 활동하며 고통을 겪은 전 활동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한사성을 신뢰하고 연대해 주신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 죄송합니다.
그동안 한사성의 근무환경과 임금체계, 조직문화의 미흡한 점을 직시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지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중한 업무량은 단체가 설립된 2017년부터 늘 고민이었습니다.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이버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것과 함께 단체의 생존을 위한 활동도 병행해야 했습니다. 자원과 배경 없이 시작한 단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 사업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고, 이런 상황이 여러 가지 문제의 불씨를 키웠습니다.
비영리단체 인건비 지원사업을 통해 18년 당시 100만원 이었던 임금을 조금씩 개선한 결과 19년 7월부터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2019년 7월부터는 9~18시까지 8시간 근무를 시행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에는 외부 사업의 양을 대폭 줄여 업무량을 조절하였습니다. 2019년 2월부터 활동가 전원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였고, 2020년 1월 17일에 진행된 정기총회에서는 활동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처무규정을 제정하고 단체의 제도를 더욱 보완하도록 정관을 개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활동 조건 개선과 운영의 합리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차츰차츰 진행해 왔습니다.
2020년 2월 26일, 적게는 5개월 많게는 11개월 간 한사성에서 함께 활동하셨던 활동가 여섯 분으로부터 최고장을 받았습니다. 한사성의 사과, 최저임금 미달분 임금과 시간외수당 총 11,948,747원을 3월 2일까지 지급할 것, 치료비용 등 위자료 명목으로 11,200,000원을 3월 9일까지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한사성 활동 과정에서 얻게 된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한시도 늦출 수 없다는 판단으로 1,120만원을 3월 9일 전달하였고, 임금 등 미지급금에 관하여는 외부 전문가 및 활동가 전원이 상의한 결과 “미지급금 전액을 지급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한사성은 해당 문제와 관련한 기록과 자료를 자세히 살피고 제대로 된 사건 파악을 위해 노력했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도 적법하게 산정된 금액을 산출하여 전액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조사에 성실히 응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조정에 따라 전 활동가들의 대리인이 산정하여 제시한 금액 1,560만원 전액을 3월 23일 송금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의 금액지불에 대해 곧 회원 임시총회를 열어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사후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신속히 진행하는 탓에 미리 회원 분들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 깊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진정을 제기한 전 활동가들에게만 미지급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번 사안으로 불거진 활동가들의 노동조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며, 2019년 7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활동가 전원에게 소급하여 제대로 보상하는 것이 법적 의무이자 도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현재 재직 여부를 불문하고 최저임금에 미달한 금액을 받으며 활동해 온 활동가는 총 10명이며 이들이 최저임금 지급 시기 전까지 일한 개월 수를 모두 합하면 총 146개월입니다. 이에 대해 상반기 임시총회를 열어 10명에게 최저임금 미달분 임금을 지급하는 안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시간 외 수당은 예산 책정이 어려워 대체휴무, 근무시간 엄수 등을 이행해가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근무환경을 개선해 나가며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사성 예산에서 가장 큰 지출 항목은 임금입니다. 한사성 상근 활동가는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7인이며, 올해 인건비 예산은 최저임금을 적용한 약 1억 4,300만 원입니다. 인건비는 2019년부터 두 종류의 사업 기금에서 지출되고 있습니다만, 이 사업들 가운데 하나는 올해 종료 예정이며 다른 하나는 내년 종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후원금을 쓰지 않고 유보금으로 둔 까닭 하나는 이런 사업들이 모두 종료된 상황에서도 현재 상근자 임금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 확보와 자립이었습니다. 사업비를 제외한 나머지 후원금만으로는 단 1년의 인건비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간문제는 마땅한 공간도 없이 시작했던 한사성에게 그동안 큰 문제였고, 여전히 염려스러운 부분입니다. 현재 한사성이 입주해 있는 공간은 2017년도 서울시 모 재단의 지원으로 입주하여 공동공간을 1차 사용하였고, 2019년도 25 제곱미터 단독 공간으로 이동하여 2차 사용 중에 있습니다. 2017년도 공동공간에서도 열악한 근무환경과 상담환경이었고, 2019년도 단독공간 역시 열악한 환경인 것은 사실입니다. 좁은 공간임에도 과중한 업무로 함께 할 동료가 많이 필요했고 재정은 실제로 충분치 않았습니다. 공간지원이 끝나는 2021년도 5월 이후 서울시내 안정적인 공간의 보증금 혹은 월세를 마련하고자 그동안 재정적인 노력을 해왔으나 활동을 건강히 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서둘러 마련해 안정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하겠습니다.
한사성은 2017년부터 사이버성폭력 근절이라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운동은 무척 가난했고, 활동가들은 그 가난이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후원자들께서 매달 보내주시는 소중한 후원금은 천금 같았습니다. 한사성이 절벽 위에 섰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후원금을 차곡차곡 저금했으나, 이 돈을 더욱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더욱 지속 가능한 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음을 통감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의 노고와 많은 분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사성은 없었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그동안 한사성의 어려운 역사를 함께 쓴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거듭 드립니다.
한 공간에서 같이 활동하는 우리는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 존재합니다. 단체의 목적인 온라인성착취 피해여성들의 생존과 치유를 위한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내는 ‘활동가’이면서 노동을 통해 온전히 자기 삶을 실현할 주체로서의 ‘노동자’라는 이중적 지위는 항상 그 사이의 간극을 만들었고 그것은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었습니다. 갈등의 국면에서 이것을 더욱 긴히 토론하지 못하고 ‘활동가’정체성을 더 중시한 한사성의 조직문화가 문제제기하신 분들을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아프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한사성은 여성인권운동 단체로서 급성장하며 여러 활동을 이어왔지만 그와 함께 단체의 내실을 다져야 하는 당면한 과제와 중장기적인 과제에 매번 마주했습니다. 작년 한사성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내부 안정화’였으나 그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못해 이번 문제제기에 대한 책임도 무겁게 느낍니다. 그럼에도 사무국과 피해지원국을 조직하고 휴가 제도, 결재 방식, 업무일지, 피드백 회의 등 여러 가지 시스템을 도입했고 조직문화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지만 일일이 부딪혀 배우면서 하나씩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위해 현재는 상근 활동가가 집행위원회 위원이 되어 사업과 활동 뿐 아니라 조직운영도 정기적 회의를 개최하여 안건 심의, 집행결정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 지속가능한 인력, 재정, 공간, 조직형태 등을 진단하며 논의하고 있고, 조직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2019년, 미흡한 상태에서 새로운 동료를 맞이했던 과실을 뼈아프게 느끼며 전 활동가들과의 첫 만남을 상기합니다. 각자가 안고 있던 기대와 비전들이 한사성을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내길 바랐으나 한사성에서의 기억이 고통으로 남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동료를 돌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활동가 스스로를 돌보기조차 녹록치 않았던 환경을 감내한 전 활동가들에게, 그동안 미성숙하고 서툰 한사성을 거쳐간 모든 동료에게 깊은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현 활동가들 모두 이번 문제제기를 하나하나 성찰하고 있습니다. 매우 아프고 무거운 일이지만 반드시 소화하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한사성은 올해로 4년을 맞이했으나, 아직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지금의 아픔을 밑거름 삼아 더욱 치열히 고민하고, 오늘의 부족함에 스스로 스러지지 않고 버티고 나아지고 내일의 희망을 꼭 만들고 싶습니다. 지켜보고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3월 26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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