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직장 동료 관계였고 성폭력처벌법 위반/스토킹 처벌법 위반 등으로 9년을 구형받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2019년 11월부터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을 통해 350여 차례 만나달라고 요구했고, 고소 이후엔 합의를 요구하며 20여 차례 연락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직접 피해자를 찾아오지 않고 ‘정중하게’ 문자로만 연락을 했다며 스토킹 범죄 위험경보판단 회의에서 누락시켰다. 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며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350여 차례의 연락이, 정중한 표현이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누구의 시선에 입각한 것인가?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것이 무색하게 온라인 공간의 사이버 스토킹은 이처럼 피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물리적 위협이 없어서, 합의를 요구하는 말이어서,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스토킹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세상은 여성들의 불안을 항상 개인적 문제, 지나친 망상으로 취급하며 간과해왔다. 왜 불안을 느끼는지, 가해자의 행위가 어째서 위협이 되는지 잘 듣고자 하지 않는다. 자신의 피해를 믿지 않는 세상에 피해를 증명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던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불안이 얼마나 타당한지 또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피해 발생 후 일주일 사이에 서울시의원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 “(가해자가) 31살 청년이다. 서울 시민이고 서울교통공사에 들어가려면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과 취업 준비를 했을 것”이라며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말을 했고, 여가부 장관은 "피해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피해자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가?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 목적뿐 아니라, 당장 지금 겪고 있는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절박한 도움을 바라며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피해자는 이미 두 차례 경찰에 신고 했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피해자에게 보호 정책이 가닿지 못한 것은 피해자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피해 대책으로 경찰은 해당 사건이 피해자가 보호조치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므로 앞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반하더라도 보호조치를 하겠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서울교통공사는 해당 사건의 후속 조치로 여성 역무원의 당직을 축소하겠다고 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변화의 물결이 사회에 스며들고 있지만, 여성의 직장이, 환경이, 삶이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변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계속 폭력을 겪고, 죽임을 당하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우며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격을 박탈당한다.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만들어 내는데도 피해가 다시 발생했다면 이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지, 어떤 체계가 작동되지 않았는지, 본질적인 대응과 예방을 위해서 더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서울시의원, 여가부 장관, 경찰, 서울교통공사, 법원, 우리 사회 공동체는 그 책임을 느껴야 한다.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지 실질적 방안을 고민 없이 시민으로서의 여성, 노동자로서의 여성을 다시 타자화하고 배제하며 의사결정권과 노동권을 무시하는 것은 손쉽고 편협한 행정일 뿐이다.
피해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항했다.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손놓고 있는 동안 피해자들은 기대보다 더딘 변화의 간극을 버텨내고 있다. 계속 피해를 당한 존재로만 남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 저항하던 피해자를 마음을 다해 애도하며, 변화의 틈이 더 벌어지도록, 누군가 혼자 지치지 않도록, 끝끝내는 그 틈을 함께 뚫고 나아가도록 계속해서 변화의 불씨를 지필 것이다.
2022. 9. 22.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9월 14일,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직장 동료 관계였고 성폭력처벌법 위반/스토킹 처벌법 위반 등으로 9년을 구형받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2019년 11월부터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을 통해 350여 차례 만나달라고 요구했고, 고소 이후엔 합의를 요구하며 20여 차례 연락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직접 피해자를 찾아오지 않고 ‘정중하게’ 문자로만 연락을 했다며 스토킹 범죄 위험경보판단 회의에서 누락시켰다. 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며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350여 차례의 연락이, 정중한 표현이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누구의 시선에 입각한 것인가?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것이 무색하게 온라인 공간의 사이버 스토킹은 이처럼 피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물리적 위협이 없어서, 합의를 요구하는 말이어서,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스토킹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세상은 여성들의 불안을 항상 개인적 문제, 지나친 망상으로 취급하며 간과해왔다. 왜 불안을 느끼는지, 가해자의 행위가 어째서 위협이 되는지 잘 듣고자 하지 않는다. 자신의 피해를 믿지 않는 세상에 피해를 증명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던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불안이 얼마나 타당한지 또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피해 발생 후 일주일 사이에 서울시의원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 “(가해자가) 31살 청년이다. 서울 시민이고 서울교통공사에 들어가려면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과 취업 준비를 했을 것”이라며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말을 했고, 여가부 장관은 "피해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피해자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가?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 목적뿐 아니라, 당장 지금 겪고 있는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절박한 도움을 바라며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피해자는 이미 두 차례 경찰에 신고 했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피해자에게 보호 정책이 가닿지 못한 것은 피해자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피해 대책으로 경찰은 해당 사건이 피해자가 보호조치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므로 앞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반하더라도 보호조치를 하겠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서울교통공사는 해당 사건의 후속 조치로 여성 역무원의 당직을 축소하겠다고 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변화의 물결이 사회에 스며들고 있지만, 여성의 직장이, 환경이, 삶이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변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계속 폭력을 겪고, 죽임을 당하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우며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격을 박탈당한다.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만들어 내는데도 피해가 다시 발생했다면 이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지, 어떤 체계가 작동되지 않았는지, 본질적인 대응과 예방을 위해서 더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서울시의원, 여가부 장관, 경찰, 서울교통공사, 법원, 우리 사회 공동체는 그 책임을 느껴야 한다.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지 실질적 방안을 고민 없이 시민으로서의 여성, 노동자로서의 여성을 다시 타자화하고 배제하며 의사결정권과 노동권을 무시하는 것은 손쉽고 편협한 행정일 뿐이다.
피해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항했다.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손놓고 있는 동안 피해자들은 기대보다 더딘 변화의 간극을 버텨내고 있다. 계속 피해를 당한 존재로만 남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 저항하던 피해자를 마음을 다해 애도하며, 변화의 틈이 더 벌어지도록, 누군가 혼자 지치지 않도록, 끝끝내는 그 틈을 함께 뚫고 나아가도록 계속해서 변화의 불씨를 지필 것이다.
2022. 9. 22.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