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5일, 대법원은 리얼돌 수입업자 이상진 부르르닷컴 대표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수입 통관 보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이상진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이 수입 리얼돌이 음란물이 아니라고 최종 판결을 내린 것과 다르게,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아동 크기의 리얼돌은 성인 크기의 리얼돌과는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물품의 전체 길이와 무게는 16세 여성의 평균 신장과 체중에 현저히 미달하고 여성의 성기 외관을 사실적으로 모사하면서도 음모의 표현이 없는 등 미성숙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본 사건의 주심인 민유숙 대법관은 “이 사건 물품을 예정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고 폭력적이거나 일방적인 성관계도 허용된다는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 태도를 형성하게 할 수 있고, 아동에 대한 잠재적인 성범죄 위험을 증대시킬 우려가 있다”며, “물품 그 자체가 성행위를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직접 성행위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실물이라는 점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비교해 그 위험성과 폐해를 낮게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여성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본뜬 리얼돌에 가해지는 폭력이 실제 여성에게도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높게 본 점에서 이번 판결은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아동·청소년'에게만 한하는 문제인가. 아동·청소년 이외의 여성의 신체를 현실적으로 본딴 '성적 도구'는 허용되어도 되는가. 이는 여성의 신체를 본딴 상품이 사회에 만연하게 유통될때에 여성들이 느낄 모욕감, 수치심 그리고 쉽게 성적 대상화 됨으로써 수반되는 잠재적 여성 폭력의 대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판단이다. 리얼돌이 존재하는 자체가 여성혐오이자 폭력이며 여성인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보다 본인들의 '해소할 권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혐오자들의 해악한 논리의 손을 들어준 1심 및 2심 재판부의 결정 보다야 진일보한 이번 판결을 환영하나, 리얼돌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만연한 성적 대상화와 성착취 문화를 보여준다는 사회적 맥락이 이번 판단에서 배제 되면서,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아동·청소년임을 구분할 것인가라는 잘못된 방향의 논쟁만을 남겼음이 유감스럽다.
한편으로 본 판결을 통해 수입통관만 금지되었을 뿐, 리얼돌은 여전히 쿠팡과 같은 대규모 이용자를 가진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 이용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러한 리얼돌 구입 후기와 중고 거래 글이 수시로 게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리얼돌을 이용한 성매매 업소를 단속할 근거 또한 여전히 없다. 한쪽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본뜬 ‘인형’이 쉽게 성적으로 거래되고 품평되고 소모되는 동안 그 ‘인형’의 ‘실사판’인 여성들이 먹고 숨쉬고 일상을 살아가는 풍경이 공존하는 괴이한 사회에서 과연 무엇을 근거로 여성인권이 예전보다 나아졌고 성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인권은 타인의 욕구를 다 허용해주고 남는 공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도록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고려되고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다. 이 당연한 논리가 혐오에 가리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얻어 리얼돌에 대한 전면적 불법화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2021.11.30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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